같은 약 다른 적응증에 대한 "가격 책정 달리해야”
신약 개발을 중심으로 성장해 온 바이오산업이 '멀티 인디케이션(Multi-indication)'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신약 개발 자체가 목표였던 제약사는 어느새 100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블록버스터 의약품을 속속 등장시키고 있으며, 하나의 약물로 다양한 질환과 증세를 치료하는 적응증 확대로 ‘만병통치약’ 시대를 기대케 하고 있다(편집자 주).
◇ 약물 하나로 치료 영역 확대 시도하는 K-바이오
[바이오타임즈] 글로벌 의약품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하나의 약물로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질환이나 증세를 확장하기 위한 연구개발(R&D)이 활발하다. 국내 제약사도 적응증 확대에 적극 나서며 신약 트렌드에 부합하는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있다.
최근 셀트리온의 알레르기성 천식, 만성 특발성 두드러기 치료제 '졸레어’의 바이오시밀러 '옴리클로’는 적응증을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셀트리온은 옴리클로가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으로부터 품목허가 승인을 받았다고 지난 9일 밝혔다. 이번 승인으로 옴리클로는 알레르기성 천식, 비용종을 동반한 만성 비부비동염, 만성 특발성 두드러기 적응증에 대한 허가를 획득했다.
대웅제약은 ‘펙수클루’의 적응증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펙수클루는 현재 국내에서 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 급성·만성위염 위점막 병변 개선에 효과가 있는 약물로 인정받았다.
당뇨병 신약 '엔블로'의 적응증을 중등증 신장질환을 동반한 당뇨병 환자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회사 최근 중등증 만성 신장질환을 동반한 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엔블로의 추가 3상 임상시험계획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승인받았다.
여기에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로 인한 궤양 예방,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P) 제균을 위한 항생제 병용요법, 비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NERD) 치료 후 유지 요법 등의 R&D에 집중하고 있다.
동아ST는 비만치료제 후보물질 'DA-1726'을 당뇨병약이나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 치료제로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신라젠은 스위스 바실리아로부터 도입한 항암후보 물질 'BAL0891'을 핵심 파이프라인으로, 적응증 확대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회사는 삼중음성유방암과 위암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 중인 항암 후보물질 'BAL0891'을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 환자에게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 중이다.
현재 미국과 한국에서 임상 1상을 진행 중인 삼중음성유방암과 위암에 지난 4월 미국 임상종양학회(AACR)에서 방광암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지난달에는 AML의 임상 추진 계획을 밝히며 계획을 가시적 성과로 연결 중이다.
◇ '적응증별 약가산정' 필요성 제기돼…해외에서는 이미 제도 도입
국내외 많은 제약사가 하나의 약물로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적응증 확대 R&D에 힘 쏟는 가운데, 업계에선 '적응증별 약가산정(Indication-based Pricing, IBP)' 제도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다.
IBP는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채택하고 있는 가치 기반 가격산정(VBP)을 보다 세분화한 기준이다. VBP가 해당 질병 경중에 따라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라면, IBP는 하나의 약제가 가진 여러 적응증에 따라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다.
적응증 확대 추세에도 국내에서는 출시 당시 첫 적응증에 따라 약가를 결정하고 적응증이 추가될 때마다 약가가 인하하는 단일 약가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한 개의 의약품이 여러 개의 적응증을 가진 경우 어떤 약가와 가치가 매겨진 적응증에서 먼저 출시하는지에 따라 수익성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IBP를 적용하는 대표적인 프로세스는 2가지로 적응증별 개별 브랜드 허가와 실제 가격을 차등해 사후 정산하는 방식이 사용된다. 여기서 실제 가격을 차등해 사후 정산하는 방법은 전체 적응증의 가중평균 단일약가를 산정하거나 적응증별 환급률을 차등해 적용하는 두 가지로 나뉜다.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IBP 적응을 통한 약가 산정 기준을 일부 약제에 적용해 효과성과 경제적 효용성을 확인하고 있다.
업계는 IBP를 도입함으로써 제약사는 신약 개발 불확실성을 줄여 R&D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의료시스템이나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이 실제 치료 혜택에 상응하도록 해 환자 접근성을 개선하는 등 효율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
의약품정책연구소 서동철 소장은 지난 1일 다국적사 기자모임 간담회를 통해 “현재 수십 가지 적응증을 확보한 면역항암제 등 새로운 항암신약 및 희귀질환치료제 등장으로 VBP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면서 “IBP 도입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가격이 낮아진다는 점이 환자 접근성을 높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갈수록 낮아지는 약가로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적응증 확보에 부담이 돼 결국 환자 접근성을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VBP 대비 IBP는 치료 효과가 가치에 반영돼 기업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고, 이는 R&D 투자를 늘리는 요소가 될 수 있어 결과적으로, 효과적인 의약품으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효율성이 향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이오타임즈=김가람 기자] news@bi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