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이래 처음으로 해외 유망 의료 AI 기업 인수…인수자금은 외부 차입 등으로 충당
이번 인수로 유방 촬영 데이터 1억 장 확보… 유방 영상 AI 시장서 초격차 발판 마련
미국 시장의 선두주자인 볼파라와의 시너지로 글로벌 의료 AI 기업으로서 독보적 지위 확보
[바이오타임즈] “유방암 특화 AI 플랫폼 기업 ‘볼파라’ 인수를 통해 세계 최대 의료시장인 미국에서 매출을 본격적으로 올리고, 더 나아가 루닛과 볼파라의 시너지를 통해 모든 암 영역의 중심에서 글로벌 표준이 될 것이라 자신한다.”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 서범석 대표는 14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방암 특화 AI 플랫폼 기업 ‘볼파라 헬스 테크놀로지(Volpara Health Technologies, 이하 볼파라)’ 인수 후의 사업 방향과 기대효과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 루닛은 미국 내 2,000곳 이상 의료 기관에 AI 솔루션을 공급하는 다국적 기업 볼파라의 지분 100%를 미화 1억 9,307만 달러(한화 약 2,525억 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루닛은 앞서 이날 오전 이사회를 열고 볼파라의 지분 인수를 의결했다.
이번 인수는 루닛이 창립 이래 처음으로 해외 유망 의료 AI 기업을 인수하는 것이다.
서 대표는 “미국에서 성공해야 계속 잘 성장할 수 있는데, 루닛이 아직 미국에서의 입지가 약하다. 미국 시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볼파라와의 시너지를 통해 미국에서의 본격적인 영역 확장에 나서겠다”고 인수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인수자금은 외부 차입 등으로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박현성 루닛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인수자금 조달에 대해 “루닛의 보유현금과 합 맞는 투자자들의 투자, 그리고 인수금융으로 충당할 계획이며, 이번 인수를 위해 추가 증자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볼파라가 보유한 미국 등 서양권 여성의 유방 촬영 데이터 1억 장은 인수 없이는 절대 모을 수 없는 분량으로, 단순히 1장당 얼마라는 가치를 넘어 수천 개의 의료 기관을 뚫어야 얻을 수 있는 가치”라며 “1억 장의 데이터는 루닛의 사업에 엄청난 플러스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루닛의 볼파라 인수는 아직 최종 완료 단계는 아니다. 우선 볼파라는 내년 2분기 이내에 주주총회를 열고 주주 75% 동의를 얻어야 하며, 볼파라가 뉴질랜드 기업인 만큼 뉴질랜드 정부의 승인도 얻어야 한다. 루닛은 인수 최종 완료 시점을 내년 4월로 예상한다. 참고로 볼파라는 뉴질랜드 기업이지만, 호주에서 상장했으며, 전체 매출의 97% 이상이 미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볼파라는 어떤 회사?
볼파라는 지난 2009년 뉴질랜드 웰링턴에 설립된 유방암 검진에 특화된 AI 플랫폼 기업으로, 미국 시애틀에 사무소를 두고 미국 내 임상 및 영업 활동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6년 4월 호주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이후 유방암 조기 진단을 위한 AI 플랫폼을 미국 시장에 집중적으로 공급하며 매년 견조한 매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특히 미국 전체 유방촬영술 검진 기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00곳 이상 의료 기관에서 볼파라 제품을 사용하며, 지난해 기준 미국 내 시장 점유율 42%를 차지할 정도로 미국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
볼파라는 유방암 조기 진단과 검사 과정의 워크플로우(Workflow) 효율화를 위한 다양한 AI 솔루션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120건 이상의 특허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및 유럽 CE 인증 제품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대표 제품으로는 ▲유방 조직의 밀도를 정량화해 유방암 위험 평가에 도움을 주는 솔루션 볼파라 덴서티(Volpara Density) ▲개인 맞춤형 유방암 위험 평가를 제공하는 솔루션 볼파라 리스크(Volpara Risk) ▲실시간 피드백 제공을 통한 검사 과정의 자동화 및 품질 개선에 도움을 주는 솔루션 볼파라 페이션트 허브(Volpara Patient Hub) ▲객관적인 품질 지표 및 자동화된 보고를 통해 의료진의 생산성 향상을 위한 솔루션 볼파라 애널리틱스(Volpara Analytics) 등이 있다.
무엇보다 유방암 검진에 특화된 정밀한 AI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미국 등 서양권 여성 약 1억 장의 유방 촬영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이들 데이터는 제품 개발을 위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고객 동의를 얻어 법적 분쟁 가능성을 모두 해소한 것으로, 루닛은 볼파라 인수 후 추가로 연간 약 2,000만 장 이상의 데이터를 지속 확보할 예정이다. 루닛이 유방암 진단 AI 솔루션 개발을 위해 학습한 데이터는 30만 장으로, 볼파라가 보유한 1억 장이라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는 향후 경쟁사와의 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볼파라는 연구개발(R&D)에 매진한 기술혁신 기업으로, 지난해 130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매출이 안정적으로 상승해 올해는 손실이 79억 원으로 감소 추세다. 루닛은 볼파라 인수 후 양사의 사업적, 재정적 시너지를 통해 흑자전환 시기를 앞당기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방침이다.
◇왜 볼파라인가?
이날 루닛 서범석 대표는 볼파라 인수가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성사됐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2023년 8월 볼파라 경영진을 만나 첫 번째 M&A를 제안했고, 11월 거래 독점권을 획득했다. 그리고 12월 14일 인수 계약(SIA)을 체결했다”며 “루닛뿐만 아니라 다수의 기업이 볼파라 인수에 나섰기 때문에 매우 경쟁적인 과정이었고, 타임라인도 매우 촉박했다”고 밝혔다.
루닛이 이렇게까지 볼파라 인수에 대해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양사가 전략적 관점을 많이 공감했고, 루닛의 미래를 위한 변화에 볼파라가 꼭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특히, 루닛은 ‘인공지능 암 정복’이라는 비전 아래 의료 AI 솔루션 개발 회사에서 궁극적으로 플랫폼 회사로의 성장을 추진하고 있다.
서범석 대표는 “앞으로는 시스템으로 접근해서 모든 의료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구축하고, 고객 사이트마다 AI를 커스터마이제이션(Customization, 맞춤형 최적화)해서 정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며 “모든 환자의 데이터를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 시장 내 선두주자인 볼파라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간 루닛의 비즈니스는 아시아에 초점이 맞춰졌고, 유럽은 확장 중이다. 인허가가 늦게 이뤄져 미국 시장은 아직 기반이 약하다. 내년에는 미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확장하는 시기로, 볼파라 인수로 미국 내 성장에 많은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아울러 정확도 99.9%의 자율형 AI 실현에도 박차를 가하고, 유방 촬영 분석을 통한 AI 기반 미래 암 발병 위험 예측도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기자간담회에는 볼파라의 로저 앨렌 볼파라 상임이사와 데이비드 메초프레트 사업개발 부사장이 참석했다.
로저 앨렌 이사는 “이번 인수 건은 아주 획기적인 딜이라고 생각한다. 볼파라의 미션은 특별한 기술을 활용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도모하는 것”이라며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시장에서의 루닛의 역량을 잘 알고 있다. 미국 시장의 선두주자인 볼파라와의 시너지를 통해 암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앞으로의 여정을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데이비드 메초프레트 부사장은 “지난 몇 년간 지켜본 루닛의 기술력과 운영 방식에 대해 강한 인상을 받았다. 특히 경쟁사들보다 견고한 제품과 뛰어난 연구실적, 과감한 투자 능력 등을 갖고 있어 이번 딜이 성사됐다고 생각한다”며 “양사의 강점을 결합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의료 AI 시장에 강한 바람을 일으켰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향후 미국 내 모든 비즈니스는 볼파라가 담당하게 되며, 미국 외 시장은 루닛이 맡는다. 또한 양사의 협업을 통한 제품 출시도 논의할 계획이다.
서범석 대표는 “인수합병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만큼 루닛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있어 아웃풋이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며 “인수라는 것이 돈으로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껏 루닛이 쌓아온 인지도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라 자부심을 느끼며, 계속해서 내부적 성장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바이오타임즈=김수진 기자] sjkimcap@bi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