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및 유럽 희귀의약품지정 시 R&D 세제 감면·시장 독점권 등 지원 '쏠쏠'
국내 희귀의약품 지정 지원 미미한 수준…보험급여율도 선진국 ‘절반’ 수준
[바이오타임즈]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개발 중인 신약후보물질에 대한 미국 및 유럽 ‘희귀의약품지정’ 소식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과거 희귀의약품은 낮은 유병률로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아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개발을 꺼리던 분야였다. 최근 들어 신약개발에 집중하는 기업들 사이 미국과 유럽의 ‘희귀의약품지정(Orphan Drug Designation, ODD)’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희귀의약품지정은 환자가 10만 명 이하인 희귀난치성 질환을 위한 치료제 개발 및 허가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미국, 유럽, 일본 등 다수 국가들이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관련 제도를 마련하고 지원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희귀약품으로 지정되면 미충족 의료수요가 높은 만큼 승인이 더 수월할 수 있다.
글로벌 CRO(임상시험대행기관)이자 의약전문 리서치 기관 아이큐비아가 지난 2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 FDA에 올해 3월까지 총 6,506 품목이 희귀의약품지정 제도를 신청했다.
이 중 1,144개 품목이 최종적으로 희귀의약품지정 품목으로 지정됐다. 이 제도에 신청한 6개 품목 중 1개 품목 꼴로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된 셈이다.
2022년에는 승인된 신약 37개 품목 중 20개 품목이 희귀의약품지정 제도를 통해 승인됐다. 무려 54% 수준이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미국과 유럽의 희귀의약품지정 의약품 도전 늘어
나노입자 항암제 연구기업 에스엔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19일 'SNB-101'이 FDA로부터 소세포폐암 적응증으로 희귀의약품지정을 받았다.
SNB-101은 회사가 독자 기술력으로 개발한 나노입자 기반 항암제다. 비임상 동물 소세포폐암 모델에서 효능을 나타냈으며, 이를 근거로 올해 4월 미국 FDA에 희귀의약품 지정 신청을 완료했고 심사를 거쳐 이번에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됐다.
항체치료제 전문 신약개발 기업 파멥신은 지난 2월 FDA로부터 전신모세혈관 누출 증후군 치료제로 개발 중인 항체 신약후보물질 ‘PMC-403’의 희귀의약품지정을 받았다. PMC-403은 TIE-2 표적 혈관정상화를 기전으로 하는 혁신신약(First-in-Class)으로 개발 중이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은 지난해 면역항암제 'GI-101의 메르켈 세포암에 대해 FDA로부터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고, 현재 GI-101의 글로벌 임상 1/2상이 순항 중이다. 지엔티파마도 FDA, EMA, 식약처로부터부터 퇴행성 뇌질환 신약후보 '크리스데살라진'을 루게릭병 적응증으로 희귀의약품지정을 받았다.
2021년에는 제일약품의 관계사 온코닉테라퓨틱스의 이중 저해 표적항암제 '네수파립(Nesuparib, OCN-201/JPI-547)', 큐리언트의 브룰리 궤양(Buruli ulcer)을 적응증으로 한 텔라세백(Telacebec, Q203), 압타바이오가 삼진제약과 공동연구 중인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 'Apta-16'이 FDA로부터 희귀의약품지정을 받았다.
프레스티지바이오파마는 2020년 FDA, EMA, 식약처로부터 췌장암 표적 항체치료제 'PBP1510'에 대해 희귀의약품지정을 받았다. PBP1510은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임상 1/2a상이 진행 중이다.
그 외에도 에이치엘비, 파로스아이바이오, 네오이뮨텍 등 국내 여러 바이오벤처가 희귀의약품지정 파이프라인을 확보했다.
대웅제약, 한미약품, 종근당 GC녹십자, 보령, SK바이오팜, LG화학 등 전통제약사와 대기업도 희귀의약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희귀의약품지정 품목을 보유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FDA에 희귀의약품지정을 받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은 50곳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 희귀의약품지정, 미국과 유럽에 우선 순위에 두는 이유는?
대개 의약품의 경우 국내에서 먼저 개발 및 출시한 후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유독 희귀의약품만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개발을 진행해 희귀의약품지정을 받는 분위기다.
희귀의약품지정을 받게 되면 세금 감면, 허가 신청 비용 면제 등의 혜택과 함께 시판 후 독점발매기간 보장권이 부여된다. 미국과 유럽은 연구개발(R&D)에 들어간 비용의 50%에 대해 세금 감면 혜택과 임상개발 보조금 등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시장 독점권 혜택은 해당 기간 다른 기업이 동일한 의약품을 출시할 수 없도록 제한하기 때문에 수익을 독점할 수 있어 가장 강력한 인센티브 제도로 꼽힌다. 유럽은 시판허가일로부터 10년, 미국은 7년의 시장 독점권을 인정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7년 희귀질환관리법을 제정 및 시행하면서 희귀의약품 관련 인센티브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하지만 타 국가의 희귀의약품 개발 지원제도에 비해 지원 혜택이 미미한 수준이다.
품목허가 유효기간이 10년 부여되며, 독점권은 4년에 불과하다. 미국과 유럽의 희귀의약품 지정 제도와 공통점은 품목허가 심사신청 수수료 할인 및 면제와 우선심사제도 뿐이다.
업계에서는 많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희귀의약품 개발에 힘을 쏟는 것에 비해 정부지원이 턱없이 부족해 전략적 접근 필요성이 거론된다.
또, 지난 10년간 국내 희귀의약품 보험급여율이 53%로 집계돼, 유럽 주요국의 절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면서 업계의 불만이 커지는 상황이다. 유사 연구결과와 비교 시 독일(93%), 프랑스(81.1%)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에 신속 등재절차에 따라 허가된 희귀질환의약품에 대한 경제성평가면제 확대 등 희귀질환 및 희귀질환 치료제의 특성을 고려한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희귀의약품 개발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 중 하나다. 세계 각국의 희귀의약품 개발 지원으로 글로벌 희귀의약품 시장도 급성장세를 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이밸류에이트파마에 따르면 전세계 희귀의약품 시장은 지난해 약 1,600억 달러(231조 원)에서 오는 2026년 2,800억 달러(404조 원)로, 연평균 12% 성장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산업을 글로벌 산업으로 키우려면 부가가치가 높은 희귀질환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며 “실효성 있는 희귀의약품지정 제도 개선 및 해외 임상을 포함한 R&D 단계의 인센티브 제도 마련 등 범부처 차원에서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이오타임즈=김가람 기자] news@biotimes.co.kr